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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의 혁시와 각시

혁시와 각시???????

 

 

"혁시와 각시" 이게 도대체 무슨소리냐,도대체 어느놈이냐?하고 궁금해 하실분이 혹시

있을까하여 '혁시와 각시'의 태생에 참고들 하시라고 1989년도에 대전의 한밭산악회 회지('한밭 뜨락')에

올렸던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혁  시  와  각  시

1987년 여름,智異山 天王峰을 始發로하여 1989년6월 한밭산악회 정기산행 대상지였던

鳥嶺山에서 꼭 70회째의 산행을 마친 한밭고을의 匹夫로서 創刊에 즈음하여 이글을

쓰게됨에 특별한 感懷를 갖는다.

현재 근무중인 직장에 몸담은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직장산악회의 산행時마다 거의 

빼지않고 참석은 하되 宿泊地에서 밤새워 술을 마시고는 昨醉未醒인채로 산행에 나서는 

직원들을 배웅(?)하고 또다시 滿醉상태에서,하산하는 직원들을 막걸리잔으로 맞이하곤

하던 '날나리'가 이렇게 변하였슴은 실로 今昔之感이 아닐수 없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

하였던 초기에는 頂上에 올랐다는 지극히 단순한 成就感,흘린 땀의 量에 비례하여

줄어드는 체중(90kg을 육박하던 것이 지금은 75kg 내외임)에서 보람을 찿을수 있었으나 

이제는 나름대로 어설픈 의미도 부여해 볼만큼 변해있는 자신에 문득 놀라기도 한다. 

 

복잡한 도심 거리에서 만나게되는 모든사람에게서는 例外없이 他人을 느끼게되나,

산행중에는 처음 대하게되는 登山客들에게서도 친근함을 느끼게되어 '반갑습니다.'

'좋은 산행되십시요.'하고 인사하고 격려하면, 파아란 하늘 신선한 공기,健康한 疲勞

속에서 마음은 끋없이 맑고 純粹해짐을 느낀다.

山頂은 陵線과 溪谷을 거느리고 항상 그자리에 있으면서 男子와 女子,富子와 貧子,

나이의 많고 적음,지위의 높고 낮음 等等... 世俗에서의 기준을 떠나 겸허하고

소박한 열망 하나만을 받아 그너른 품에 안아주는 후덕함으로 계속 산꾼들을 불러

올리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종주,雪岳산 西北陵종주를 포함하여 恐龍陵,南北德裕,嶺南알프스,架山 八公山

從走...,풋나기로서는 스스로 대견스럽기만한 이모든 산행의 대부분을 아내와 단둘이서

해낼수 있게 됨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감사해야 하겠지만,그대상을 둘로 압축해보라면

그하나는 우리 한밭산악회요 그또하나는 아내(각시)를 꼽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빈틈없는 기획과 진행으로 산행의 안전과 즐거움을 함께 보장하며 일행을 리드해가는 한밭산악회의 執行部에 감사하는 마음은,엄두조차 내지못하던 필자의 겨울산행을 가능케

하였다는 데에서 더할수 없슴을 느끼게된다. 금년정월 始山祭를 겸한 發旺山 산행에서

산짐승들조차 밟지않은 純白의 雪原을 밟으며 정상에 오를수 있도록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러쎌하느라 수고해준 젊은 회원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수 없으며,2월의 특별산행

으로 마련된 漢拏山 登攀에서는 筆者의 生涯에서 가장 豊富하고 恍惚하리만큼 멋진 雪景을

만끽할수 있었는데,특히 年中 30일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맑은날이 기다려주었슴에야..

 

필자의 70회 산행의 例外없는 同伴者였으며,2/3 이상을 단둘이서 함께했던 아내(각시,

柳 濟連)와의 진한 夫婦愛는 물론 산친구로서의 깊은 우정은 함께하는 산행의 회수에

비례하여 깊어만 가는것 같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무렵의 감당키 어려운 體重때문에 무릎관절로 어려워하는 남편을

위해, 野營한다음 tent를 걷고 배낭을 쌀때면 아내는 몰래 몇개의 짐을 자기 배낭에다

더넣고 출발해버리곤 했는데, 이럴때마다 가슴저려오게 느껴지는것은 아마도 至純의

夫婦愛이리라.

 

五臺山에서 虎嶺 毘盧 象王 頭老峰과 東臺山의 다섯봉우리를 돌고 老人峰 소금강을 거쳐

雪岳으로 들어가 雪岳洞을 기점으로 마등령 수렴동계곡 가야동계곡 을 거쳐 大靑峰에 

오른다음 華彩陵을 따라  權金城으로 하산한 작년 여름휴가의 장기산행 역시 아내와 단둘

이었는데(너무 장황 한가요?) 이때 가야동 계곡에서의 일이다 수렴동 대피소를 떠난지

한시간 정도 지나 계곡이 둘로 갈라진 지점에서 잠시 살펴보다가 넓어 보이는 계곡으로

20분 이상을 올라갔으나 길안내가 되어주던 표지기는 커녕 인적조차 없는것이,'아차 잘못

들었구나'하는 생각에 일단 계곡 合流지점으로 되돌아 내려와 이리저리 확인하니 우리가

택하지않은 계곡의 저쪽 건너편에서 색바랜 표지기 하나가 나풀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마터면 공룡능선으로 올라붙어 죽을 고생을 하였을 생각을 하니 그 색바랜 표지기

하나가 어찌나 고마웠던지....  " 우리도 표지기를 만들어 길찿는 등산인들에게 우리가

느꼈던 그런 고마움을 나누어주자." 하여 "반갑습니다  혁시와 각시"란 표지기가 만들어

졌고, 아울러 "혁시와 각시"의 역사도 시작된 것으로 우리의 이런 생각처럼 유용한

표지기가 되어 주었으면하는 바램뿐인데....., 글쎄다.

이산행에서의 또하나의 이야기로,가야동계곡에서 다람쥐밥이 되고 말았을 어른 주먹만한 잣송이를 네개나 주워와 담은 잣술이 그 진한 향기와 더불어 맛도 괜찮다는 아버님의 評,

다음 몇번의 산행에 조금씩 덜어 가지고 가서 일부 일행들에게 맛보이며 받은 好評들이

다람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배낭에 담아 설악을 누비고

大田까지 힘들게 가져온 노력을 충분히 보상 해주었던 것이다.

 

금년 휴가산행으로 계획한 龍牙長城陵 등반을 비롯하여 앞으로 100회, 또 200회로 계속

이어질 각시와 함께하는 혁시의 모든 산행이 무사하고 보람된것이 될수 있도록 우리

한밭山岳會의 아낌없는 성원 있으리라 믿는다.

 

 

졸필 읽어 주시느라 고생들 많이 하시었습니다. 느닷없이 와글 선배님들 앞에 나타나

헷갈리게 했을것 같은 '혁시와 각시'에대한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이제 200여회를 조금 넘긴 지금에 보면,

이글을 쓸 당시와 지금은 많은것이 달라졌지요.

첫째: 표지기(리본)가 산에서의 공해가 될수 있슴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경우도 보았구요.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고생해보신분은 이마음 아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받으렵니다.

둘째: 중간에 한 10년 정도의 공백으로 지금은 헥헥거리느라 정신이 없고, 일행들에게

      구박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다시 열을 내보지만 한참이 걸릴

      겠지요.

 

'혁시와 각시' 표지(리번)과 산행 사진 몇장 첨부해봅니다.

그럼 모두들 행복 하시기 바라며 이만.....

안녕!

첨부이미지혁시와 각시표지 리번

  첨부이미지 2005년 운장산(239회) 첨부이미지 1989(?)년 설악 첨부이미지 1990(?)한라산 백록담(82회) 첨부이미지 전남 강천산(234회)

2005-09-29 AM 03_12_15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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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30 AM 01_49_37 전북 운장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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